위대한 개츠비
몇일전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인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화한 동명 제목의 DVD를 빌려봤다.
1974년도 작으로 이제는 70대의 할아버지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름살이 없는 얼짱 얼굴로 나오는 아주 오래된 영화다.
1974년도 작으로 이제는 70대의 할아버지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름살이 없는 얼짱 얼굴로 나오는 아주 오래된 영화다.
소설은 여러번 읽어봐서 내용을 다 알고 있지만,
글로서 상상했던 것을 영상으로 본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글로서 상상했던 것을 영상으로 본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 시대 파티에서 추는 춤은 너무 경박해보였고,
대공황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의 화려하고 흥청망청 즐기는 모습이 좀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그치만 소설에 충실하게 만든 영화라 그런지
대사나 내용, 심지어는 소설에서 묘사한 장면들 모두 영화에 그냥 옮겨 담은 듯 했고
내가 소설을 읽을때 상상했던 장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사나 내용, 심지어는 소설에서 묘사한 장면들 모두 영화에 그냥 옮겨 담은 듯 했고
내가 소설을 읽을때 상상했던 장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데이지를 떠나보낸 개츠비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부자가 되어 데이지가 사는 집이 보이는 웨스트 에그에 집을 얻고,
매일 사치스러운 파티를 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데이지의 사랑을 얻고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부자가 되어 데이지가 사는 집이 보이는 웨스트 에그에 집을 얻고,
매일 사치스러운 파티를 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데이지의 사랑을 얻고자한다.
하지만, 개츠비는 데이지의 뺑소니를 대신 덮어씀으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개츠비의 장례식날 데이지는 물론이고,
파티에서 개츠비와 친분이 있는 것처럼 말했던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고, 쓸쓸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개츠비의 장례식날 데이지는 물론이고,
파티에서 개츠비와 친분이 있는 것처럼 말했던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고, 쓸쓸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마음이 심란할때면 나는 위대한 개츠비의 책을 옆에 두는 편인데,
나는 "위대한 개츠비"의 내용을 곱씹을 때마다 진정한 우정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리고 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번 읽은 사람 만이 내 친구가 될 수 있어"라고 말했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번 읽은 사람 만이 내 친구가 될 수 있어"라고 말했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사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젤 중요한 내용은 맨 앞에 나온다.
어렵지 않은 이 의미만 이해한다면, 책을 다 읽은거나 다름 없다고 난 생각한다.
어렵지 않은 이 의미만 이해한다면, 책을 다 읽은거나 다름 없다고 난 생각한다.
사람들에 대해 이런 저런 평가를 하고 싶을 때는
너의 좋은 면을 다른 사람들도 다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너의 좋은 면을 다른 사람들도 다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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